Executive Summary

AI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두 극단 사이에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긁어 쓰는 무상 이용이냐, 창작자를 강하게 보호하는 독점적 저작권이냐. MIT 경제학 공동연구가 최근 내놓은 워킹페이퍼는 게임이론 모델로 두 극단이 모두 실패한다고 짚는다. 그중에서도 반전은 강한 저작권 쪽에 있다. 창작자를 지키자고 강화한 권리가 어떻게 창작자를 가장 먼저 밀어내는가.

모델이 내놓는 결과는 반직관적이다. 저작권을 강화할수록 가장 독창적인 창작자가 가장 먼저 노력을 줄인다. 연구진은 이를 독창성 페널티라 부른다. AI 기업이 유일한 큰 구매자로 서면 대체 불가능한 독창적 콘텐츠의 값을 깎을 유인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창작자를 지키려던 제도가 정작 지켜야 할 사람을 먼저 밀어낸다는 것이다.

연구진의 결론은 저작권을 이분법으로 볼 게 아니라 시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작자를 대표해 AI 기업과 집단으로 교섭하고 독창적 기여에 더 큰 몫을 돌려주는 데이터 중개자가 그 대안으로 제시된다. 순수 이론 모델의 결과인 만큼, 수식보다 그 직관과 함의를 따라가며 읽는 편이 낫다.

아래 세 숫자는 이 논문이 게임이론 모델에서 끌어낸 핵심 결과다. 실측 데이터가 아니라 모델이 내놓은 균형값이라는 점을 전제로 읽어야 한다.

약 ½

혁신가의 균형 노력

사회적 최적 대비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다

약 0.79

추종자의 균형 노력

혁신가보다 손실이 훨씬 작다

유한 상한

미래 모델 정밀도

원본 창작자가 빠지면 성능이 갇힌다

1

저작권을 강화하면 창작자가 보호된다는 상식

생성형 AI가 인간이 만든 글과 그림, 코드로 학습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뒤, 정책 논의는 대체로 두 갈래로 갈렸다. 한쪽은 학습을 공정 이용의 연장으로 보고 자유로운 사용을 옹호한다. 다른 한쪽은 창작자를 보호하려면 저작권을 더 강하게 만들어 무단 학습을 막아야 한다고 본다. 이 이분법은 책상 위의 논쟁에 그치지 않고 이미 법정에서 다투어지고 있다(LLM은 무엇까지 학습해도 되는가, 유럽 최고법원의 첫 물음). 직관적으로는 두 번째 편이 창작자의 편처럼 보인다. 권리가 강할수록 창작자에게 유리하리라는 생각이다.

MIT 오퍼레이션스 리서치 센터와 MIT 슬론, 워싱턴대 로스쿨 연구진이 함께 쓴 워킹페이퍼 "Market Design for AI: Beyond the Copyright Binary"는 그 상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연구진은 무상 이용과 강한 저작권을 각각 게임이론 모델로 세운 뒤, 두 극단이 모두 시장 실패로 끝난다는 것을 보인다. 무상 이용은 창작자에게 아무 보상도 주지 못하고, 강한 저작권은 창작 유인을 오히려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강한 저작권이 실패하는 이유는 창작자가 돈을 못 받아서가 아니다. 문제는 시장의 반대편이다. 학습 데이터를 사는 쪽에 AI 기업이 사실상 유일한 큰 구매자로 선다. 파는 사람은 많고 사는 사람은 하나에 가까운 구조에서, 구매자는 값을 낮출 힘을 갖는다. 저작권이 강해져 창작물 하나하나에 값이 매겨지더라도, 그 값을 부르는 쪽이 아니라 깎는 쪽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 이 모델의 출발점이다.

2

가장 독창적인 창작자가 먼저 벌받는다

연구진이 세운 정적 모델은 AI 기업이 먼저 창작자별 가격을 제시하고, 창작자들이 그 가격을 보고 각자 얼마나 공들일지 정하는 순서로 짜여 있다. 여기서 창작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독창적 기여자와, 이미 널리 퍼진 흐름에 동조하는 추종자다. 독창적 기여자의 콘텐츠는 다른 곳에서 비슷하게 구할 수 없는 정보를 담고, 추종자의 콘텐츠는 서로 겹치는 정보를 담는다.

모델의 핵심 결과가 여기서 나온다. 균형 상태에서 독창적 기여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의 절반 정도밖에 노력을 들이지 않는 반면, 추종자의 노력은 그보다 훨씬 덜 줄어든다. 연구진은 이 비대칭을 독창성 페널티라 이름 붙였다. 가장 귀한 데이터를 만드는 사람이 가장 큰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직관은 이렇다. 유일한 큰 구매자인 AI 기업은 비용을 아끼려 값을 낮추고 싶어 한다. 추종자의 콘텐츠는 이미 서로 겹쳐 한계가치가 낮으니 굳이 깎을 것도 없다. 반면 독창적 콘텐츠는 대체 불가능해 값이 비싼데, 바로 그래서 구매를 크게 줄이면 비용이 크게 준다. 그래서 저작권이 강해질수록 독창적 창작자의 구매만 집중적으로 깎이고, 그들이 가장 먼저 노력을 접거나 시장에서 밀려난다.

AI 기업 — 유일한 대형 구매자 비용을 아끼려 값을 낮추려는 유인 독창적 기여자 대체 불가 · 값이 비쌈 추종자 이미 대체 가능 · 값이 낮음 구매 대폭 삭감 구매 소폭 삭감 균형 노력 수준 사회적 최적의 약 ½ 균형 노력 수준 사회적 최적의 약 0.79
▲ 독창성 페널티의 메커니즘 — 유일 구매자는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부터 값을 깎는다 | 페블러스 원본 도식

이 결론은 페블러스가 앞서 다룬 관찰과 정확히 맞물린다. AI 콘텐츠 라이선싱 시장에서 값이 매겨지는 것은 협상력을 쥔 소수 브랜드뿐이고, 대다수 퍼블리셔는 무료 학습 데이터로 남는다는 이야기였다(협상력이 값을 정하는 AI 콘텐츠 라이선싱 시장). 그 글이 현장에서 본 것을, 이 논문은 왜 그런 일이 구조적으로 벌어지는지 게임이론으로 설명한다.

3

AI가 좋아질수록 데이터가 나빠진다

연구진은 이 통찰을 시간이 흐르는 동적 모델로 확장한다. 여기서 두 번째 시장 실패가 드러난다. 모델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다시 말해 AI가 잘할수록 사람은 자기 힘으로 새것을 만들기보다 AI가 내놓은 초안에 더 기댄다. 그 결과 새로 생산되는 콘텐츠가 서로 닮아가고, 이 균질해진 데이터가 다시 학습에 들어간다.

악순환이 여기서 완성된다. 좋은 모델이 사람을 AI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 의존이 콘텐츠를 균질하게 만들고, 균질해진 데이터가 학습에 되먹여져 편향을 걸러내기 어렵게 한다. 연구진은 이를 정밀도의 저주라 부른다. 원본을 만드는 창작자가 완전히 빠져나가면 상관관계만 강한 데이터를 아무리 늘려도 미래 모델의 성능은 유한한 상한에 갇힌다는 것이 모델의 결론이다.

① 모델 정밀도 ↑ AI가 초안을 더 잘 만든다 ② 사람의 AI 의존 ↑ 자기 힘보다 AI 초안에 기댐 ③ 콘텐츠 균질화 새로 만든 것들이 서로 닮아감 ④ 상관관계만 강한 데이터 원본이 빠지며 성능이 유한 상한에 갇힘 되먹임되는 악순환
▲ 정밀도의 저주 — 모델이 좋아질수록 데이터가 균질해지고, 그 데이터가 다시 학습에 되먹여진다 | 페블러스 원본 도식

논문은 이미 관찰되는 신호를 근거로 든다. 대화형 AI가 퍼진 뒤 개발자 질의응답 커뮤니티의 트래픽이 크게 줄었고, 검색 결과 상단의 AI 요약이 퍼블리셔로 가던 방문을 잠식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원본을 만들고 서로 참조하던 자리를 AI 답변 소비가 대신하면, 다음 세대 모델이 배울 새로운 원본 자체가 줄어든다. AI-레디 데이터의 진짜 위기는 품질을 다듬기 이전에 공급이 마르는 데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4

데이터 중개자, 처벌이 아니라 보상

두 극단이 모두 실패한다면 남는 길은 시장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연구진이 제안하는 장치는 데이터 중개자다. 흩어진 창작자들을 대표해 AI 기업과 하나의 상대로 집단 교섭하는 기구다. 창작자가 각자 값을 흥정할 때는 유일한 큰 구매자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만, 한데 묶여 교섭하면 그 힘을 상쇄할 대항력이 생긴다.

설계의 핵심은 생산 유인과 분배를 분리하는 데 있다. 창작자에게는 노력에 든 한계비용만큼 값을 치러 계속 만들 유인을 살리고, 여기에 참여를 보장하는 정액 보조금을 따로 얹는다. 이 보조금을 나눌 때는 각 창작자가 모델의 정밀도에 실제로 기여한 몫에 비례해 배분한다. 그 결과 독창적 기여자일수록 더 큰 몫을 받는다. 강한 저작권이 독창성에 물리던 벌을, 기여도에 비례한 보상으로 뒤집는 셈이다.

이 중개자는 ASCAP이나 BMI 같은 기존 저작권 관리 단체와 다르다. 기존 단체가 흩어진 라이선싱의 거래비용을 줄이는 역할이었다면, 이 모델의 중개자는 AI 기업의 구매력에 맞서는 대항력을 만드는 것이 새 기능이라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창작자를 대신해 협상하고 혁신에 값을 매기는 이런 교섭의 논리는, 배우와 성우가 자기 데이터를 AI 학습에 넘기기 전에 조합과 협상하도록 한 최근의 단체교섭에서도 노동의 언어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 논문은 순수 이론 모델이라 현장에서 검증된 처방은 아니다. 그러나 던지는 질문은 실무의 급소를 찌른다. 정산 원장을 깔아 누가 얼마를 받을지 계산하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데이터를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다. 이 논문은 그 앞 단계, 애초에 사람이 계속 좋은 데이터를 만들도록 시장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를 묻는다. 나눌 파이를 정교하게 계산하기 전에, 파이를 계속 굽게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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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학술 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