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cutive Summary
2021년 4월, ETRI에서 함께 일하던 두 연구자가 회사 이름을 정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제품을 설계하는 것도, 투자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한 편의 선언문을 쓰는 일이었다. 그 글의 제목이 Pebblous Manifesto다. 이 글은 그 원문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고, 그 선언이 오늘의 페블러스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짧게 덧붙인다.
선언문은 "당신과 데이터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요?"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데이터를 조약돌처럼 손에 잡히게 만들겠다는 비유, 가상세계에서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을 예술로 다루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회사 이름 페블러스(Pebblous)도, 첫 솔루션의 이름 페블로(Pebblo)도 이 비유에서 나왔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문장들 가운데 일부는 실물 제품이 됐고 일부는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긴 분석이 아니라, 회사의 출발점을 과장 없이 보여주는 짧은 기록이다.
이 글은 무엇인가
페블러스는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신 연구자 이주행·이정원이 2021년 11월 세운 딥테크 스타트업이다. 두 사람은 2013년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해온 오랜 동료였고, 창업을 결심한 것은 그해 4월이었다. 회사 이름을 정한 직후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쓴 글이 아래의 창업선언문, Pebblous Manifesto다.
한국CDE학회 웹진에 실린 창업기 소개에 따르면, 이 선언문은 사업이 자리 잡은 뒤 돌아보며 정리한 회고가 아니라 창업의 첫 실행 행위였다. 창업자들은 이 글을 "심장과도 같은 글"이라 부르며 이후 창업 과정에서 여기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금 회사가 내건 "데이터의 진심"이라는 표현도 이 선언문을 쓰면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이 글의 본문은 새로 쓴 서사가 아니라 원문 자체다. 볼드로 강조한 문장, 문단 구성, 마지막 클로버 문구까지 2021년 선언문을 그대로 실었다.
Pebblous Manifesto
페블러스
당신과 데이터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요?
데이터는 차갑고 손에 잡히지 않죠. 데이터는 쉽게 모이지 않고 좀처럼 의미를 드러내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이 데이터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간극을 좁히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래알 같은 데이터에서 보석같은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해 왔어요. 이를 위해 현실을 모델링한 가상세계에서 데이터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데이터는 우리가 느끼고 즐기는 대상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 만들죠. 우리는 지능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데이터와 좀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한 첫 번째 솔루션을 페블로에 담았어요. 페블로는 데이터를 아름답고 쓸모있게 가공한 것이에요. 모래알 같은 데이터를 손에 잡히게 만든 조약돌 같은 것이죠. 우리는 페블로와 감성적으로 인터랙션 할 수 있으며, 그것을 보고 통찰을 얻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 하기도 하며 자랑할 수도 있죠. 페블로는 가상세계와 실세계가 만나는 매개체가 될 거에요. 페블로는 메타버스에 구현되어 다른 사용자와 공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고 전시하거나 가지고 놀 수도 있어요. 페블로 갤러리나 페블로 비치에 가면 다른 사람들의 페블로가 펼쳐져 있을 거에요.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고 넓은 세상과 만날 수 있죠.
데이터와 한층 가까워진 우리는 페블로에 인생을 담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세상을 담게 되겠죠. 우리는 페블로를 통해 데이터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되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변화시킬 거에요.
🍀 데이터의 진심, 페블러스
— 2021년 페블러스 창업선언문(Pebblous Manifesto) 전문
그날의 비유는 지금 어디에
선언문에는 아직 제품이 없었다. 조약돌과 모래알, 가상세계, 예술 같은 비유만 있었다. 그 비유들은 지금 대부분 이름을 가진 제품이 되어 있다.
"모래알 같은 데이터에서 보석 같은 정보를 뽑아낸다"는 문장은 데이터 품질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DataClinic으로 이어졌다. "현실을 모델링한 가상세계에서 데이터를 만든다"는 대목은 합성 데이터를 생성하는 PebbloSim이 됐다.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 만들죠"라는 다짐은 아티스트와 협업한 데이터 작품과 국립광주과학관 AI뮤지엄 전시 같은 활동으로 실현됐다. 창업 1년을 돌아본 회고에서 두 사람은 "우리는 1년 동안 초심 그대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고 적었다.
모든 문장이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선언문 후반의 "페블로 갤러리나 페블로 비치", 메타버스에서 페블로를 거래하고 전시한다는 구상은 지금의 제품 라인업에는 없다. 초기의 개인·예술·메타버스 색채가 짙던 비전은 이후 산업 현장의 데이터 문제로 방향을 좁혀 갔다. 질문은 그대로다. 데이터를 어떻게 손에 잡히게 만들 것인가. 답만 더 뾰족해졌다.
페블러스가 오늘 어떤 회사가 되었는지는 자매 글 「안녕하세요, 저는 페블러스입니다」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다. 2021년의 시적 선언과 2026년의 데이터 회사를 나란히 놓으면, 이 회사가 어디서 출발했는지가 잘 보인다.
창업의 첫 장면
선언문을 쓰기까지의 장면은 의외로 단출하다. 시작은 2021년 4월 1일, 만우절에 온 한 통의 문자였다. 이주행이 이정원에게 함께 회사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정원은 3분 만에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농담 같은 날짜에 온 진담이었다.
오래 몸담은 연구소를 떠나는 결정이었지만 부담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ETRI의 연구원 창업참여제도 덕에 휴직 상태로 회사를 시작할 수 있었고, 창업 준비 기간의 월급과 초기 연구비도 지원받았다. 안정된 연구직과 창업 사이에서 한쪽을 완전히 버리지 않아도 되는 길이 제도로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이 데이터에 마음을 둔 계기는 각자 달랐다. 이주행은 왜곡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지켜본 경험에서 "좋은 정보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품어 왔다. 이정원은 자신의 일상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무게를 체감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사용자와 데이터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는 한 문장에서 두 사람의 생각은 만났다. 선언문의 첫 문장이 바로 그 문장이다.
사명 페블러스(Pebblous)는 조약돌을 뜻하는 Pebble과 멋지다는 뜻의 Fabulous를 합친 말이다. 흩어진 모래알 같은 데이터를 조약돌처럼 손에 잡히게 만들겠다는 포부가 이름 안에 들어 있다. 그 이름을 정한 그날, 두 사람은 곧바로 선언문을 썼다. 회사보다 먼저 쓴 글이었다.
참고문헌
- 1.ETRI Webzine 편집부. (2021). "데이터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 페블러스 이주행·이정원 인터뷰." ETRI Webzine VOL.182.
- 2.윤예본. (2022). "ETRI 두 남자의 도원결의, 데이터에 진심 '페블러스'." 헬로디디.
- 3.이주행. (2023). "창업할 결심 — 페블러스 실전 창업기." 한국CDE학회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