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cutive Summary

1911년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뒤 지금까지 실험으로 확인된 초전도체는 7,000종이 넘는다. 그런데 그중 물질을 만들기 전에 이론적으로 먼저 예측된 것은 20종 미만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시행착오와 우연의 산물이었다. 초전도가 등장하고서도 한 세기 넘게 발견이 "찾아 헤매기"에 머물렀던 이유다.

알토대학교와 라이스대학교가 참여한 SuperC 컨소시엄은 이 순서를 뒤집었다. 머신러닝으로 유망한 원소 조합을 먼저 좁힌 뒤 계산으로 거르고, 그다음에 실제로 합성해 실험으로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예측되고 검증된 물질이 카고메 구조의 YRu₃B₂와 LuRu₃B₂다. 다만 실측 임계온도는 각각 0.81K, 0.95K로 이론 예측치(3.37K, 1.88K)에 크게 못 미쳤다.

이 글은 두 물질 자체보다 그것을 찾아낸 방법에 주목한다. 성과는 초전도체 두 종이 아니라, 발견을 우연에서 탐색으로 바꾼 파이프라인이다.

20종 미만

합성 전 예측된 초전도체

나머지 7,000여 종은 시행착오·우연의 산물

0.81·0.95K

두 물질의 실측 임계온도

실용과는 먼 극저온 — 성과는 온도가 아니라 방법

수십억

사전 선별 가능한 후보 수

머신러닝이 처리 가능하게 만든 화학 공간 규모

2033

SuperC의 상온 초전도체 목표

이번 결과는 그 로드맵의 방법 검증 단계

1

115년, 7,000종, 그리고 20종 미만

초전도는 특정 온도 아래에서 물질의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이다. 1911년 처음 관측된 이후 지금까지 실험으로 확인된 초전도체는 7,000종을 넘어섰다. 그런데 그 목록을 만든 방식은 대부분 손으로 후보를 골라 하나씩 합성하고 저온에서 측정해 보는, 오래 걸리고 운에 기대는 과정이었다.

7,000종 가운데 물질을 만들기 전에 이론적으로 먼저 예측된 것은 20종이 채 되지 않는다. 초전도 메커니즘 자체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자들이 서로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계에서 언제 어떤 조건으로 초전도가 나타나는지를 처음부터 계산으로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고, 실험 변수도 복잡했다. 그래서 발견은 대체로 예측이 아니라 발굴에 가까웠다.

문제는 물질의 조합이 사실상 무한하다는 데 있다. 원소를 어떤 비율로 어떤 구조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후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사람이 직관과 경험으로 유망해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는 방식으로는, 이 거대한 공간의 극히 일부만 훑을 수 있었다.

2

먼저 예측하고, 나중에 만든다

알토대학교의 페이비 퇴르매(Päivi Törmä) 교수가 이끄는 SuperC 컨소시엄은 2023년 출범한 국제 협력 조직으로, 라이스·프린스턴·보훔 루르대학교와 도노스티아 국제물리센터 등이 참여한다. 이번 결과는 2026년 6월 국제 학술지 《Physical Review Research》에 실렸다. 이들이 택한 방법의 핵심은 순서에 있다. 관행이 물질을 먼저 만들어 놓고 초전도 여부를 측정했다면, 이들은 계산으로 후보를 먼저 지목한 뒤 그것만 골라 만들었다.

파이프라인은 네 단계로 이어진다.

  • 머신러닝 사전 선별 — 방대한 원소 조합을 머신러닝으로 훑어 초전도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좁힌다. 계산 비용이 큰 정밀 계산을 모든 후보에 돌리는 대신, 그 앞단에 값싼 예측기를 두어 공간을 압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 제1원리 계산 — 좁혀진 후보에 대해 양자역학 기반의 정밀 계산을 수행해 실제로 초전도가 나타날지, 임계온도는 얼마일지를 이론적으로 확인한다.
  • 합성 — 계산을 통과한 물질을 라이스대학교 에밀리아 모로산(Emilia Morosan) 교수팀이 실제로 만든다.
  • 실험 검증 — 만들어진 시료의 자화율·비열·전기저항을 측정해 초전도가 정말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한다.
1 2 3 4 ML 사전 선별 제1원리 계산 합성 실험 검증
▲ SuperC 컨소시엄의 4단계 파이프라인 — 머신러닝 사전 선별로 후보를 압축한 뒤 계산·합성·실험 검증으로 이어진다. 페블러스 원본 도식 (재해석)

퇴르매 교수는 이 방식이 "머신러닝으로 사전 선별한 뒤 유망 후보에만 표적 계산을 실시하는" 구조이며, 앞으로의 초전도체 발견을 크게 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접근으로 다룰 수 있는 물질의 수를 수십억 개까지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이 훑던 규모와는 자릿수가 다른 탐색이다.

3

카고메 격자에서 나온 두 초전도체

이 파이프라인을 통과해 예측되고 검증된 물질이 YRu₃B₂와 LuRu₃B₂다. 둘 다 육방정 CeCo₃B₂형 구조를 가지며, 루테늄(Ru) 원자가 평면 위에서 카고메 격자를 이룬다. 카고메는 일본 전통 바구니의 짜임 무늬에서 이름을 딴 구조로, 삼각형과 육각형이 맞물린 특유의 배열이다. 이 격자에서 전자가 이동성이 낮은 평탄 띠(flat band)를 형성하고, 그 조건이 초전도성을 유도했다.

▲ 카고메 격자 — 루테늄(Ru) 원자(주황 점)가 삼각형과 육각형이 맞물린 평면 배열을 이루며, 이 구조에서 전자가 평탄 띠(flat band)를 형성한다. 페블러스 원본 도식 (arXiv:2512.16945 재해석)

실험에서 확인된 임계온도는 YRu₃B₂가 0.81K, LuRu₃B₂가 0.95K였다. 두 물질 모두 초전도 부피 분율이 거의 100%에 이르러, 표면이나 일부가 아니라 시료 전체가 초전도 상태로 들어가는 벌크 초전도성임이 확인됐다.

3.1이론과 실측이 어긋난 지점

예측이 정확히 맞았던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계산된 임계온도는 YRu₃B₂가 3.37K, LuRu₃B₂가 1.88K로, 실측치보다 크게 높았다. 연구팀은 이 차이를 포논 모드가 지나치게 부드러워지면서(phonon softening) 나타나는 준안정적 상전이로 설명했다. 쉽게 말해 모델이 물질의 원자 진동 특성을 실제보다 단순하게 잡았고, 그 결과 임계온도를 과대평가했다는 뜻이다.

이론 예측 vs 실측 임계온도(Tc)

YRu₃B₂ 이론 3.37K · 실측 0.81K
LuRu₃B₂ 이론 1.88K · 실측 0.95K

막대 길이 = 이론 예측치 대비 실측치 비율 · 주황 = 실측, 옅은 회색 = 이론 예측(포논 연화로 인한 과대평가). 페블러스 원본 도식

중요한 것은 이 괴리가 파이프라인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델이 초전도 여부 자체는 맞혔고, 온도라는 정량값에서 어긋났다. 어디서 왜 틀렸는지도 물리적으로 설명됐다. 예측이 100점이 아니어도, 예측하고 만들고 확인하는 순환 자체는 작동했다.

4

성과는 물질이 아니라 방법이다

1K 미만의 임계온도는 실용과 거리가 멀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만 작동하는 초전도체는, 상온에서 저항 없이 전기를 흘려보내겠다는 오랜 목표와는 아직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이 연구가 성과로 불리는 이유는 온도가 아니라 순서에 있다.

YRu₃B₂와 LuRu₃B₂는 합성되기 전에 예측되었고, 예측된 대로(오차는 있었지만) 초전도체로 확인된 사례다. 지난 115년의 발견이 대부분 우연과 발굴이었다면, 이번에는 계산이 먼저 후보를 지목하고 실험이 그것을 따라가 확인했다. 발견의 방식이 우연(serendipity)에서 탐색(search)으로 바뀐 것이다.

SuperC 컨소시엄은 2033년까지 상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찾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번 두 물질은 그 목표를 이룬 결과가 아니라, 목표로 가는 방법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첫 검증이다. 수십억 개의 후보를 훑을 수 있는 탐색기를 손에 쥐었다는 사실이, 두 종의 극저온 초전도체보다 더 오래 남을 성과다.

5

페블러스 관점: 탐색의 해상도는 데이터가 정한다

예측-먼저-합성-나중이라는 구조를 데이터 관점에서 보면, 진짜 병목은 스크리닝 모델의 정확도가 아니라 그 앞단에 있다. 화학 공간을 수십억 후보까지 좁힐 수 있느냐는, 물질을 어떤 특징(feature)으로 표현하고 얼마나 정합적인 실험 데이터로 그 표현을 학습했느냐에 달려 있다. 표현이 성기면 아무리 좋은 모델도 엉뚱한 곳을 뒤지고, 학습 데이터가 흔들리면 예측은 온도 하나도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

이번 연구에서 이론과 실측이 어긋난 지점도 결국 표현의 문제였다. 모델이 포논 특성을 실제보다 단순하게 담았기에 온도를 과대평가했다. 어떤 물리량을 어떤 정밀도로 데이터에 담느냐가 곧 탐색의 해상도가 된다는 이야기다. 탐색 속도는 연산량이 아니라 데이터의 표현과 품질에서 먼저 결정된다.

예측-먼저 파이프라인은 초전도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신약 후보 탐색, 배터리 소재, 촉매 설계 등 실험 비용이 크고 후보 공간이 방대한 R&D 도메인에서 이미 같은 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 실험을 데이터의 부산물로 두던 방식에서, 데이터와 모델이 다음 실험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발견을 탐색으로 바꾸는 힘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후보를 제대로 표현하고 실험 결과를 정합적으로 되먹이는 데이터 구조에 있다. R&D의 자율화는 그 표현과 품질을 갖춘 조직에서 먼저 온다.

R

참고문헌

1차 소스·학술 논문

업계·보도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