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cutive Summary

로봇에게 일을 가르칠 기록만 전문으로 만드는 시설이 국내에 처음 생겼다.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대전 기계연 본원에 1,000㎡ 규모로 지은 'AI 휴머노이드 데이터 팩토리'가 11월 3일 문을 열었다.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만을 위한 데이터 생산시설로는 국내 첫 사례다.

데이터를 만드는 방법은 사람이 로봇을 원격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개소식에서는 냉장고 문을 열고 세탁물을 다루는 집안일과 자동차 안쪽의 버튼·레버 조작을 시연했다. 로봇이 지나간 경로와 몸의 움직임과 센서 값이 그대로 학습 데이터가 된다. 지금 휴머노이드 12대가 돌아가고 2030년까지 25대로 늘린다. 다만 기계연이 이 기록을 국내 산·학·연에 열어 주겠다고 밝힌 시점은 2027년 말부터다.

3절까지는 개소 발표와 보도, 그리고 공개된 1차 자료에 적힌 내용을 따라간다. 4절에서 데이터를 모으는 일과 남이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을 갈라 놓고 규격과 이용 조건 쪽으로 질문을 옮긴 대목은 이 글의 해석이다.

주요 수치

로봇 수와 사업비는 기계연이 발표한 몸집이다. 원격조작으로 쌓이는 데이터가 다른 분야에 견줘 얼마나 작은지는 바깥에서 나온 추산이고, 개방 시점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정이다.

출처: ZDNet Korea(2026-11-03), 한국기계연구원, The Robot Report(2026-07-19)

12대

지금 돌아가는 휴머노이드

중국산과 국산, 기계연이 만든 카이로스가 섞여 있다. 2030년 목표는 25대다

1,050억 원

연구단 5년 사업비

연 210억 원씩 2025년 5월부터 2030년 4월까지다. 데이터 팩토리는 그 안의 한 축이다

10만분의 1 미만

원격조작 데이터의 크기

오늘날 언어·비전 모델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에 견준 값이다. 플렉시온 니키타 루딘의 추산

2027년 말

산·학·연 개방 시작

기업·대학·연구기관이 단계적으로 쓰게 된다. 받아 쓰는 조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1

대전에 문을 연 데이터 공장

시설을 세운 쪽은 한국기계연구원이 총괄하는 '자율성장 AI 휴머노이드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이다. 단장은 박찬훈이고, ETRI가 함께 지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2025년 5월에 연구단 10개를 묶어 5년간 6,100억 원을 배정한 사업 가운데 하나이고, 이 연구단 몫은 연 210억 원씩 5년 1,050억 원이다. 기간은 2025년 5월부터 2030년 4월까지다. 기계연이 총괄하고 ETRI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함께하며, KAIST와 GIST를 비롯한 국내 대학 아홉 곳과 해외 연구기관 다섯 곳이 붙어 있다. 기업으로는 에이로봇과 라이언로보틱스와 LG전자가, 단체로는 한국로봇산업협회가 참여 기관에 들어 있다.

시설의 성격은 이름 그대로다. 로봇을 만드는 곳도, 모델을 훈련하는 곳도 아니라 로봇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칠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지다. 팔과 다리의 움직임부터 온몸을 쓰는 작업까지 한 자리에서 확보한다는 점을 기계연은 쓰임새로 꼽았다. 류석현 기계연 원장은 개소식에서 "고품질 로봇 작업 데이터의 대규모 확보는 국가 기술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 가지 배경을 덧붙여 둘 만하다. 이 연구단이 출범할 때 내놓은 구상에는 데이터 팩토리와 짝이 되는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확보한 데이터를 바깥 연구자와 나누고 외부에서 만든 AI 모델도 받아들이는 '개방형 AI 플랫폼'을 함께 구현해 'K-휴머노이드 오픈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대목이다. 이번에 문을 연 것은 그 둘 가운데 데이터를 만드는 쪽이다.

2

로봇은 냉장고 문부터 연다

수집에는 사람이 들어간다. 작업자가 로봇을 원격으로 조작해 일을 시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움직임과 작업 정보가 기록돼 AI 학습에 쓰인다. 사람의 동작을 로봇이 따라 하게 하는 방식도 나란히 쓴다. 어느 쪽이든 사람이 빠지는 자리는 없다. 기록 한 건을 만들려면 사람 한 명이 그 시간만큼 일해야 한다.

두 방식이 남기는 기록은 같지 않다. 원격조작은 사람이 로봇의 몸을 직접 움직이게 하는 쪽이라 로봇의 관절에서 나온 값이 그대로 남는다. 동작 모방은 사람이 제 몸으로 일을 하고 로봇이 그 움직임을 자기 관절로 옮겨 따라 하는 쪽이라, 사람의 몸과 로봇의 몸을 맞추는 과정이 기록에 함께 들어간다. 개소식에서 카이로스가 보여 준 것도 정밀한 물체 조작과 전신 동작 모방 두 가지였다.

두 수집 방식이 남기는 기록은 다르다 원격조작 사람이 로봇 몸을 직접 조종 로봇 관절값 그대로 기록 매핑 과정 없음 동작모방 사람이 제 몸으로 직접 동작 사람·로봇 몸 매핑 과정까지 기록 로봇이 재현(리타게팅)
▲ 페블러스 원본 도식 — 두 수집 방식의 차이는 개소식 시연과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개소식에서 보여 준 작업 목록은 산업 현장보다 집 안쪽에 가깝다. 냉장고에서 물건 꺼내기, 세탁물 다루기, 소파 정리가 일상 작업으로 시연됐고, 산업 현장 작업으로는 자동차 안쪽의 버튼과 레버를 조작하는 장면이 붙었다. 집안일이 먼저 나온 이유는 난이도가 낮아서가 아니다. 냉장고 문을 당기는 일에는 다리로 몸을 버티고 허리를 비틀고 손목 각도를 바꾸는 동작이 한꺼번에 들어가고, 세탁물처럼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물건은 같은 동작을 두 번 쓸 수 없다. 팔다리 따로가 아니라 온몸을 쓰는 데이터를 뽑기에 일상 작업만 한 것이 없다.

시설에 들어와 있는 로봇은 지금 열두 대다. 중국산과 국산이 섞여 있고, 기계연이 직접 개발 중인 카이로스(KAIROS)도 들어 있다. 한 종류로 통일하지 않은 것은 의도한 선택이다. 박찬훈 단장은 데이터 팩토리는 원래 다양한 로봇을 두고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계연은 2030년까지 스물다섯 대로 늘리고, 로봇과 수집 대상 작업도 단계적으로 넓히겠다고 밝혔다.

시설의 쓰임이 기록을 쌓는 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인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고, 학습한 AI를 다시 실제 로봇에 올려 성능을 확인하고, 거기서 새로 나온 기록을 또 학습에 넣는다. 기계연은 이 순환을 여기서 돌린다고 설명한다. 데이터를 만드는 자리와 그 데이터로 만든 모델을 실제 로봇에 걸어 보는 자리가 같은 건물에 있는 구조다.

3

원격조작을 '함정'이라 부른 사람도 있다

사람이 로봇을 조종해 기록을 만드는 방식은 지금 휴머노이드 학습에서 거의 표준이다. 그래서 그 방식 자체를 문제 삼은 글이 업계 안쪽에서 나왔다면 읽어 둘 값어치가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휴머노이드 AI 스타트업 플렉시온을 이끄는 니키타 루딘이 지난 7월 미국 로봇 전문매체 더로봇리포트에 '텔레오퍼레이션 함정'을 피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루딘은 엔비디아에서 대규모 강화학습과 로봇 시뮬레이션을 연구한 뒤 회사를 세웠고, 그가 겨눈 대상은 어느 한 기관이 아니라 업계 전반의 투자 방향이다.

루딘이 든 숫자는 하나다. 지금 쌓인 원격조작 데이터는 오늘날 언어·비전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이터보다 10만 배 넘게 작다. 그런데 이 격차를 사람이 메우려 들면 속도의 상한이 사람 쪽에 걸린다. 시연 한 건을 만들려면 누군가 그 시연을 해야 하므로, 데이터는 사람의 노동이 허락하는 속도로만 늘어난다. 거기에 조작자는 손끝에 닿는 감촉을 느끼지 못하고 깊이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해 천천히 움직이고 과하게 고쳐 잡는데, 그 버릇까지 함께 학습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루딘의 결론은 더 날카롭다. 사람이 새로 입력해 주지 않으면 처음 보는 상황을 처리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지능이라기보다 사람을 쓰는 체계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겠다고 만든 기계가, 그 기계를 가르치려고 사람을 고용하는 구조로 굳을 수 있다는 경고다. 대안으로 그가 내놓은 것은 시행착오로 스스로 익히는 강화학습과, 초기화가 즉시 되고 병렬로 돌릴 수 있는 대규모 시뮬레이션이다.

이 경고를 데이터 팩토리에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루딘도 통제된 환경에서 좁고 반복적인 작업을 시키는 경우라면 이렇게 모아도 무방하다고 적었고, 실제 로봇이 실제 물건을 만지며 남긴 기록은 시뮬레이션이 대신 만들어 주지 못하는 물리적 사실을 담는다. 다만 그가 지적한 상한은 남는다. 로봇이 열두 대에서 스물다섯 대로 늘어도 기록의 생산 속도는 조작하는 사람의 수와 시간을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시설의 성패는 로봇을 몇 대 두느냐보다 한 번 만든 기록을 몇 번이나 다시 쓸 수 있느냐에 달린다.

4

데이터 형식과 이용 조건은 아직 비어 있다

개방 계획까지는 날짜가 나와 있다. 2027년 말부터 기업과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쓸 수 있도록 시설을 단계적으로 연다. 받는 쪽에 따라 주는 것도 갈라 놓았다.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AI 모델을 연구하고 평가할 환경을, 기업에는 데이터를 모으고 실증할 기회를 준다는 구상이다. 류석현 원장은 산학연 협력으로 국산 휴머노이드 카이로스 개발을 앞당기고, 2027년 말부터 데이터 팩토리를 단계적으로 개방해 국내 피지컬 AI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도 산·학·연이 공동 활용할 데이터 생산·활용 기반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정해진 것은 거기까지다. 개소 발표와 관련 보도 어디에도 그 데이터를 어떤 형식으로 남기는지, 어떤 조건으로 내주는지, 상업적으로 써도 되는지, 누가 신청 자격을 갖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시설이 선 날과 바깥 연구자가 그 데이터를 받아 보는 날 사이는 1년 넘게 비어 있다. 그 사이에도 로봇은 계속 돌아간다.

발표에 적힌 일정과, 적히지 않은 구간 사업 시작 데이터 팩토리 개소 산·학·연 개방 사업 종료 2025년 5월 2026년 11월 · 로봇 12대 2027년 말부터 2030년 4월 · 25대 어떤 형식으로 남기고 누가 어떤 조건으로 받나
▲ 페블러스 원본 도식 — 날짜와 로봇 대수는 기계연 발표와 보도에 적힌 값이다. 점선 상자는 발표에 적히지 않은 칸을 표시한 것으로, 이 구간의 공백은 이 글의 판단이다.

이 칸을 비워 둔 것이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ISO/TC 299 산하 WG 16이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셋'을 주제로 표준을 만들고 있다. 문서 번호는 ISO 26264-1이고 제목은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셋 — 제1부: 일반 요구사항」이다. 데이터셋을 기획해서 폐기할 때까지의 생애주기를 틀로 잡고 품질과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공통 요구사항으로 규정하는 내용이며, 이족이든 바퀴든 이동 방식을 가리지 않고 산업·서비스·의료 영역에 걸친다. 2026년 6월 말에 위원회 초안으로 등록됐고 8월 말에 의견 수렴이 끝났다.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셋만을 겨냥한 국제 표준화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이 표준 논의가 짚는 병목은 데이터가 모자란다는 것만이 아니다. 수집 비용이 비싸고, 모은 데이터가 기관별로 갇히고, 평가 기준이 서로 달라서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다는 쪽이다. 같은 작업을 다른 두 곳에서 기록해도 몸체와 동작과 장면과 실행 기록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적혀 있으면 두 기록은 합쳐지지 않는다. 설비를 늘려도 경험이 누적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데이터 팩토리가 로봇을 한 종류로 통일하지 않았으니, 다양성을 얻는 대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떠안는 셈이기도 하다.

이 진단은 ISO 26264-1 초안을 쓴 연구진이 지난 6월 따로 발표한 논문에 적혀 있다. 거기서 집필진은 휴머노이드 데이터를 나중에 쓸 수 있느냐가 '물리적 정합성'에 달려 있다고 했다. 여러 갈래로 들어온 신호를 나중에 다시 쓰려면 시각을 무엇에 맞췄는지, 좌표계가 어디에 놓였는지, 센서를 언제 어떻게 보정했는지, 길이와 힘을 어떤 단위로 적었는지가 기록 안에서 확인돼야 한다는 뜻이다. 규격을 아직 정하지 않았더라도, 무엇을 정해야 하는지는 이렇게 이미 이름이 붙어 있다.

그래서 2027년 말까지의 구간에서 실제로 결정되는 것은 시설의 가동률이 아니라 기록의 모양이다. 지금 어떤 칸을 채워 두느냐가 나중에 그 데이터를 누가 쓸 수 있는지를 사실상 정한다. 적어 두지 않은 항목은 나중에 소급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5

페블러스가 이 소식을 주목하는 이유

페블러스는 앞서 로봇 학습에 쓰이는 데이터를 다섯 층으로 갈라 품질과 다양성과 재사용성과 물리적 충실도로 줄 세워 본 적이 있다(로봇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 거기서 실제 로봇으로 모은 데이터는 물리적 충실도에서 가장 높고 재사용성에서 가장 낮았다. 이번 데이터 팩토리가 만드는 것이 정확히 그 층의 데이터다. 가장 비싸고 가장 진짜에 가깝고, 그대로 두면 가장 안 퍼지는 자료다.

ISO 26264-1 초안을 따로 읽은 글도 있다(로봇은 늘어나는데, 경험은 왜 쌓이지 않는가). 그 초안이 던진 질문이 이번 개소 소식에 포개진다. 설비를 늘리면 데이터는 늘지만 경험은 저절로 쌓이지 않는다. 쌓이게 하는 것은 기록의 형식과 그것을 주고받는 조건이다.

데이터 실무자가 이 소식에서 챙겨 둘 것은 세 가지다.

  • 기록의 형식이 공개되는 시점. 그 형식이 나와야 바깥에서 같은 모양으로 데이터를 만들어 합칠 수 있다.
  • 이용 조건. 상업적 이용 범위와 재배포 가능 여부가 스타트업이 이 자료를 쓸 수 있는지를 가른다.
  • 국제 표준과의 거리. ISO 26264-1이 굳은 뒤 그쪽에 맞추려면 이미 쌓인 기록을 다시 손봐야 한다.

세 가지 모두 로봇을 만드는 쪽보다 데이터를 다루는 쪽에서 답하기 쉬운 물음이다. 어떤 값이 어떤 주기로 어디에 쌓이는지 아는 사람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예산을 들여 확인해 준 사실은 하나다. 피지컬 AI의 다음 승부처는 모델이 아니라 사람이 로봇을 조종해 만든 기록이고, 그 쓸모는 모으는 순간이 아니라 남기는 형식에서 갈린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개소 소식의 원 보도는 ZDNet Korea와 AI타임스코리아에 있고, 연구단의 당초 구상은 한국기계연구원 보도자료에 있다. 로봇 작업 데이터를 이미 스키마로 정해 쌓고 있는 팀이 있다면, 어떤 칸을 넣고 어떤 칸을 뺐는지 들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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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보도

공식 자료·표준

기고·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