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ecutive Summary

2026년 9월 20일 일요일 밤부터 메타의 AI 비서 뮤즈에게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 달라고 시킨 사람들은 주문 대신 오류 창을 받았다. 창에 뜬 문장은 "허가받지 않은 AI 에이전트의 계속된 접근은 고객이 동의한 아마존 이용약관을 위반한다"였다. 같은 계정으로 사람이 직접 들어가 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달라진 것은 주문 단추를 누르는 쪽이 사람이냐, 사람을 대신하는 프로그램이냐뿐이다. 이 글은 이 차단을 두 회사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권의 문제로 읽는다.

아마존이 내놓은 이유는 세 가지다. 메타가 뮤즈의 아마존 접근을 미리 알리지 않았고, 그 에이전트가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돌아다녔으며, 고객의 로그인 정보를 받아 두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메타는 뮤즈가 사용자의 비밀번호나 결제수단을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근거의 종류다. 아마존이 꺼낸 것은 컴퓨터 침입을 다루는 연방법이 아니라 고객이 이미 눌러 동의한 약관이었다. 한 달 반 전 항소법원이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지시로 움직였다면 접속한 쪽은 사용자 자신"이라며 앞선 금지명령을 파기했고, 차단 열흘 전에는 재심리 요청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1절부터 4절까지는 보도와 공개 기록에 남은 것을 따라간다. 이 사건을 우리 회사의 카탈로그와 주문 데이터를 누구에게 어떤 자격으로 열어 둘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 읽는 5절은 이 글의 해석이다.

주요 수치

출처: TechCrunch·GeekWire 보도, 스트라이프 발표, 아마존 이용약관(2026-08-14 갱신), IETF 공개 문서 목록(2026-08 집계).

12일

출시에서 차단까지

9월 8일 뮤즈 출시, 9월 20일 밤 아마존 차단. 새 에이전트가 대형 마켓플레이스에 닿기까지 걸린 시간보다 그 문이 닫히기까지가 짧았다

100만+

뮤즈가 바로 결제할 수 있는 가맹점

스트라이프 링크를 받는 가맹점 수다. 링크가 없는 가게라도 1회용 가상카드로 값을 치를 수 있다. 결제 배관은 이미 깔려 있다

0건

표준 단체가 채택한 에이전트 신원 규격

IETF에 올라온 관련 문서 아홉 건은 2026년 8월까지 전부 개인 제출 상태였다. 대형 사업자들은 그 초안을 이미 운영에 쓰고 있다

10개월

아마존이 남의 에이전트를 막아 온 기간

2025년 11월 퍼플렉시티 제소에서 이번 차단까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이어지는 방침이다

1

일요일 밤, 아마존이 메타의 쇼핑 비서를 막았다

뮤즈는 메타가 9월 8일에 내놓은 개인용 AI 에이전트다. 대화로 시키면 메일을 정리하고, 서식을 채우고, 여행을 알아보고, 물건을 주문한다. 출시 한 주 만에 미국 앱스토어 무료 앱 1위에 올라 챗지피티를 앞질렀다. 결제는 스트라이프의 링크를 통해 이뤄진다. 링크를 받는 100만 곳 넘는 가맹점에서는 저장해 둔 결제수단으로 바로 결제하고, 그 밖의 가게에서는 승인된 금액에만 쓸 수 있는 1회용 가상카드가 발급된다. 어느 쪽이든 결제 총액은 사용자가 대화창에서 직접 눌러 승인한다.

메타의 개인용 AI 에이전트 뮤즈 앱 아이콘과 로고
▲ 메타의 개인용 AI 에이전트 뮤즈 | Source: Meta AI

일요일이던 9월 20일 밤, 이 흐름이 아마존 앞에서 끊겼다. 뮤즈에게 아마존에서 무언가를 사 달라고 하면 주문 대신 경고 문구가 돌아왔다. 아마존 대변인이 밝힌 사유는 세 가지였다. 메타가 뮤즈의 아마존 접근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 에이전트가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스스로를 에이전트라고 밝히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고객의 로그인 정보를 받아 저장하는 것으로 보여 프라이버시와 보안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아마존 쪽은 뮤즈가 고객의 계정 페이지와 주문 내역에 닿고 결제까지 할 수 있는데 그 사실을 아마존은 알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차단이 첫 수는 아니었다. 아마존은 그 전에 메타에게 뮤즈가 다루는 서비스 목록에서 아마존을 빼 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문을 닫았다. 차단 당일에도 두 회사가 직접 대화하고 있다고 아마존은 밝혔고, 소송까지 갈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사이가 틀어진 두 회사도 아니다. 아마존 상품은 2023년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안에서 살 수 있고, 메타는 2026년 4월 아마존의 그래비톤 칩으로 에이전트 연산을 돌리는 수십억 달러 규모 계약에 서명했다. 함께 일하는 사이에서 이 항목 하나만 따로 떨어져 막혔다.

화면에 뜬 문장은 이것이다. "Continued access by an unauthorized AI agent violates Amazon's Conditions of Use, to which our customers have agreed." 허가받지 않은 AI 에이전트의 계속된 접근은 고객이 동의한 아마존 이용약관을 위반한다는 뜻이다. 문장의 주어는 에이전트이고, 동의한 주체는 고객이다. 사람이 누른 동의가 사람을 대신하는 프로그램을 막는 근거가 됐다.

아마존이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절차였다. 다른 회사의 고객을 대신해 구매해 주겠다는 제3자 응용 프로그램은 "공개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참여 여부에 관한 서비스 제공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는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뮤즈가 "사람들의 비밀번호나 결제수단을 전혀 볼 수 없다"고 밝혀 왔다. 자격증명은 에이전트가 들여다보지 못하는 저장소에 들어가 쓰인다는 설명이다. 두 회사의 말은 같은 사실을 다르게 부른다. 아마존은 자격증명이 가게 밖의 프로그램 손에 들어간 상태를 문제 삼고, 메타는 그 프로그램조차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답한다. 아마존은 자기 요구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음식 배달 앱과 식당, 온라인 여행사와 항공사처럼 남을 대신해 사 주는 서비스는 원래 파는 쪽과 합의하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이 남의 에이전트에게 문을 열어 줄 유인이 적다는 해설도 함께 나왔다. 아마존은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인 노바와 추론 서비스 베드록을 가진 쪽이라, 경쟁사의 쇼핑 에이전트가 자기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도울 이유가 마땅치 않다. 에이전트가 주문을 틀리게 넣었을 때 그 뒤처리를 떠안는 쪽이 아마존의 고객 응대 조직이라는 문제도 있다.

돈이 걸린 자리는 더 구체적이다. 아마존이 지난해 광고로 벌어들인 돈은 680억 달러를 넘고, 이 사업은 사람이 상품 페이지를 넘겨 보다가 협찬 상품을 만나는 데서 나온다. 에이전트가 검색 결과를 건너뛰고 주문만 넣으면 그 발판이 줄어든다. 반대편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뮤즈가 "거래액의 아주 작은 몫"을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몫을 낼 쪽은 물건을 파는 사업자가 되리라는 관측이 붙는다. 같은 거래를 두고 한쪽은 광고로, 다른 쪽은 수수료로 마진을 찾는다.

2

무단 접속에서 이용약관으로, 아마존이 바꿔 든 근거

이번 차단을 단독 사건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아마존은 열 달 전부터 남의 쇼핑 에이전트를 상대해 왔고, 그 과정에서 쓰는 무기가 한 번 바뀌었다.

2025년 11월, 아마존은 퍼플렉시티를 제소했다. 퍼플렉시티의 브라우저 에이전트 코멧이 일반 크롬 브라우저인 것처럼 행세하며 신원을 밝히지 않고 고객 계정에 들어와 구매를 대행한다는 것이었다. 근거로 든 법은 컴퓨터 사기·남용 방지법, 이른바 무단 접속을 처벌하는 연방법이었다. 2026년 3월 연방법원은 아마존의 손을 들어 예비 금지명령을 냈다. 코멧이 AI 에이전트로 아마존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멈추고, 이미 가져간 데이터를 폐기하라는 내용이었다.

8월 4일 제9순회 항소법원이 그 명령을 파기했다. 논리는 간단하고 강력했다.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컴퓨터를 거쳐 사용자의 지시로 움직였다면, 그 법이 말하는 "접속한 자"는 에이전트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 본인이라는 것이다. 자기 계정에 자기가 들어가는 일을 무단 접속이라 부를 수는 없다. 이 판단으로 침입법 경로는 사실상 닫혔다. 다만 법원은 계약과 이용약관에 근거한 주장까지 막지는 않았다.

제9순회 항소법원이 있는 제임스 R. 브라우닝 미국 법원 청사 정문
▲ 제9순회 항소법원이 입주한 제임스 R. 브라우닝 미국 법원 청사(샌프란시스코) | Source: Wikimedia Commons (Library of Congress)

아마존은 그 판단을 다시 받아 보려 했지만 9월 10일 재심리 요청이 기각됐다. 침입법 쪽이 완전히 막힌 것이 차단 열흘 전이다. 그사이 고객 이용약관도 손질을 거쳤다. 지금 아마존닷컴이 띄워 두고 있는 이용약관에 적힌 최종 갱신일은 8월 14일, 항소심 파기 열흘 뒤다.

근거가 옮겨 간 자리 2025.11 퍼플렉시티 제소 근거: 무단 접속 2026.03 예비 금지명령 아마존 승 2026.08.04 항소심 파기 접속 주체는 사용자 2026.09.10 재심리 기각 침입법 쪽 문이 닫힘 2026.09.20 뮤즈 차단 근거: 이용약관 침입법으로 다투던 자리가 계약으로 옮겨 간다
▲ 페블러스 원본 도식. 보도와 판결 기록으로 확인된 다섯 시점을 순서대로 옮겼고, 눈금 사이 간격은 실제 기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한 달 반 뒤 뮤즈 앞에 뜬 오류 문구가 가리킨 것이 바로 그 남은 길이다. 문구에 적힌 것은 침입도 해킹도 아닌 "이용약관"이었다. 법정에서 한쪽 근거가 막히자 같은 목적이 다른 근거를 타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쪽은 판사가 열어 주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이 스스로 쓰고 고치는 문서다.

남은 길을 쓴 것은 뮤즈 차단만이 아니다. 차단 이튿날 아마존은 퍼플렉시티 소송에도 청구를 하나 더 얹었다. 퍼플렉시티가 고객으로 하여금 아마존과 맺은 계약을 어기게 만들었다는 내용이고, 그 계약이 바로 뮤즈 앞에 뜬 문구가 가리킨 이용약관이다. 판결이 남겨 둔 문 하나를 이틀 사이에 서로 다른 두 상대에게 쓴 셈이다.

3

같은 계정으로 들어와도 사람과 프로그램은 다른 손님이다

여기서 실제로 갈리는 것이 무엇인지 보자. 뮤즈가 막히기 전이나 후나 기술은 같다. 같은 계정, 같은 비밀번호, 같은 장바구니, 같은 카드다. 바뀐 것은 그 계정으로 들어오는 존재에게 가게가 부여하는 자격이다. 사람이면 손님이고, 사람을 대신하는 프로그램이면 허가가 필요한 제3자다. 기술 문제였다면 차단은 탐지와 우회의 다툼으로 흘렀을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문서의 다툼이다.

아마존은 이 구분을 이미 문서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고객용 이용약관이 아니라 판매자용 계약 쪽이 먼저였다. 2026년 3월 4일 발효된 판매자 약관 개정판은 '에이전트'라는 항목을 새로 세워, 판매자를 대신해 아마존 시스템에 접근하는 자동화 소프트웨어와 AI 시스템 전반을 그 이름으로 묶었다. 그 에이전트에게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자동화된 주체임을 밝힐 것, 정책을 계속 지킬 것, 아마존이 중단을 요구하면 접근을 멈출 것. 권장 경로도 분명하다. 브라우저를 사람처럼 조작하는 방식 말고 공식 판매자 API를 쓰라는 것이다.

판매자 계약과 고객 이용약관은 서로 다른 문서이고, 뮤즈가 걸린 쪽은 뒤의 것이다. 그래서 뒤의 문서도 열어 볼 필요가 있다. 최종 갱신일이 8월 14일로 적힌 지금의 아마존 이용약관에는 "에이전트"라는 절이 따로 서 있다. 정의부터 넓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해, 또는 그 지시를 받아 자율적이거나 반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모두 여기 들어간다.

그 절이 에이전트에게 요구하는 것은 네 가지다. 모든 HTTP·HTTPS 요청의 사용자 에이전트 문자열에 "Agent/[이름]" 형식으로 자기가 에이전트임과 그 이름을 적을 것. 사람의 타자 속도나 페이지 이동 방식을 흉내 내거나 캡차를 풀고 넘어가는 식으로 정체를 감추지 말 것. 사람이냐 컴퓨터냐를 묻는 질문에는 사실대로 답할 것. 에이전트를 막거나 제한하려는 조치를 우회하지 말 것. 앞머리 조항은 더 짧고 세다. 아마존이 접근을 삼가 달라고 요청한 에이전트는 그 뒤로 접근할 수 없고, 어떤 에이전트가 어떻게 들어올지는 아마존이 단독 재량으로 정한다.

메타에게 아마존을 빼 달라고 한 요청과 뮤즈 앞에 뜬 팝업 사이가 이 조항 하나로 이어진다. 요청을 보낸 순간부터 그다음 접근은 약관 위반이 된다. 그리고 계정 조항은 계정과 비밀번호로 일어난 모든 활동의 책임을 계정 주인에게 지운다. 약관을 어긴 당사자 자리에 서는 것은 에이전트를 만든 회사가 아니라 그 에이전트에게 로그인을 맡긴 사람이다. 퍼플렉시티에 얹은 청구도 정확히 그 모양이다.

같은 잣대를 아마존 자신에게 대 보면 어떨까. 아마존의 쇼핑 에이전트 바이 포 미도 다른 브랜드의 사이트에 들어가 대신 주문한다. 막으려는 일을 자기도 한다는 지적에 회사가 내놓은 답은 두 가지였다. 바이 포 미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 브랜드가 원하면 빠질 수 있다. 그 답이 맞다면 아마존이 요구하는 것은 에이전트를 들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밝히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 구분이 자리를 잡으면 따라오는 질문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 요청을 처리할 수 있는가"는 시스템이 답하는 질문이지만, "이 요청을 보낸 쪽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는 회사가 답하는 질문이다. 카탈로그를 읽고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을 넣는 일은 전부 데이터에 닿는 일이고, 그 데이터에 누가 어떤 자격으로 닿을 수 있는지는 코드가 아니라 정책이 정한다. 에이전트 경제가 커질수록 이 정책 한 줄의 영향 범위가 넓어진다.

4

신분을 밝히는 규격은 생겼지만 권한은 약관이 정한다

아마존이 문제 삼은 첫 항목은 에이전트가 스스로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자기 신분을 밝히는 방법 자체는 이미 만들어져 돌아가고 있다. 웹 봇 인증(Web Bot Auth)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요청마다 서명을 붙여 이 요청을 보낸 것이 누구인지 암호로 증명한다. 클라우드플레어가 주도하고 구글 쪽 인력이 함께 쓴 구조 문서가 IETF에 올라가 있으며, 아마존 웹 서비스의 방화벽 제품도 2025년 11월부터 이 서명을 알아본다. 아마존 자신의 에이전트 브라우저 서비스는 나가는 요청에 그 서명을 붙일 수 있다.

뮤즈가 택한 길은 달랐다. 메타가 출시 때 내놓은 설명에 그대로 적혀 있다. 공개 API가 있는 서비스라면 사용자가 건넨 자격증명으로 거기 붙고, API가 아예 없으면 에이전트가 "여러분이 하듯 브라우저로 그 서비스를 쓴다". 뒤쪽 문장이 이번 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허락받은 통로가 없을 때 에이전트가 기대는 것은 사람처럼 보이는 일이다. 게다가 아마존 약관이 요구하는 신분 표시는 암호 서명이 아니라 요청 머리에 스스로 적어 넣는 한 줄이라, 적지 않기로 하면 적히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가 짚은 것도 그 지점이다. 사용자의 아이피와 쿠키를 타고 들어오면 산 쪽이 사람인지 대신 산 프로그램인지 아마존은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
▲ 일론 머스크 — 아이피와 쿠키만으로는 구매자가 사람인지 에이전트인지 가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 Source: Wikimedia Commons (Gage Skidmore)

규격의 상태는 조금 묘하다. 관련 문서 아홉 건이 IETF에 올라와 있지만 2026년 8월까지 작업반이 정식으로 채택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표준이 확정되기 전에 대형 인프라 회사들이 초안을 그대로 운영에 얹어 쓰는 중이다. 규격 이름과 판 번호가 자주 바뀌는 상태에서 각자 앞서 구현하다 보니, 같은 이름을 쓰면서도 어디까지 통하는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분과 권한이 다른 층이라는 점이다. 서명은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할 뿐 "내가 들어가도 되는가"에는 답하지 않는다. 신분을 정직하게 밝힌 에이전트도 막힐 수 있고, 값을 치르라는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클라우드플레어 자신이 이 공백을 짚어 둔다. 중개자 하나가 수많은 최종 사용자를 대신해 요청을 보내기 때문에, 중개자를 믿는 것과 그 뒤에 선 사용자 전부를 믿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항소법원이 "접속한 쪽은 사용자"라고 한 뒤 아마존이 "우리 고객이 동의한 약관"을 든 것도 정확히 이 지점에서다.

결제 쪽은 오히려 모이는 중이다. 구글이 쇼피파이를 비롯한 유통사들과 함께 내놓은 상거래 프로토콜이 2026년 1월에 공개됐고, 에이전트가 받은 결제 권한을 서명으로 증명하는 규격도 이미 여러 금융사가 참여한 채 돌아간다. 오픈AI와 스트라이프가 만든 체크아웃 규격은 남았지만 대화창 안에서 바로 결제하던 제품은 3월에 접었다. 즉 "얼마를 어떻게 치르는가"의 배관은 빠르게 정리되는 반면, "누가 어떤 자격으로 문 안에 들어오는가"는 아직 각자의 약관에 흩어져 있다.

차단이 벌어진 자리가 바로 그 빈칸이다. 표준이 아직 답을 주지 않는 층에서는 각 플랫폼의 약관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운다. 그래서 에이전트 경제의 속도는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상대 회사가 약관을 어떻게 읽느냐에 걸린다. 뮤즈는 하루아침에 멍청해져서 막힌 것이 아니다.

5

페블러스가 이 사건을 주목하는 이유

여기서부터는 이 사건을 우리 업무의 눈으로 다시 읽는다. 아마존과 메타의 다툼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이 조만간 훨씬 작은 회사의 회의실에도 올라온다. 어느 날 우리 사이트의 로그에 사람이 아닌 것이 찍히기 시작할 때, 막을지 열지 정해 둔 답이 있는가.

AI-Ready Data를 이야기할 때 대개 데이터 자체의 상태를 먼저 본다. 형식이 일관된지, 라벨이 정확한지, 출처가 남아 있는지. 이번 사건이 보여 주는 것은 그 위에 한 층이 더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존의 카탈로그는 세상에서 가장 잘 정리된 상품 데이터에 속하고 그 데이터는 지금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런데 뮤즈에게는 없는 데이터나 마찬가지가 됐다. 데이터가 준비되어 있다는 말과 그 데이터에 닿을 자격이 정해져 있다는 말은 다른 말이다.

5.1기본값을 정해 둔 회사와, 그 자리에서 정하는 회사

지금 대부분의 회사가 처한 상태는 막은 것도 연 것도 아니다. 약관에 에이전트라는 말이 없고, 사람의 로그인과 대리 프로그램의 로그인을 가르는 문장도 없다. 그 상태에서 대리 접근이 들어오면 판단은 그때그때 담당자에게 떨어지고, 대개는 일단 막는 쪽으로 기운다. 아마존이 판매자 계약에 조항을 세워 둔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조항이 있으면 어느 쪽으로 가든 결정이지만, 조항이 없으면 둘 다 사고다.

아마존이 이 문제를 어느 쪽으로 푸는지는 차단 사흘 뒤에 드러났다. 9월 23일 아마존은 판매자가 앤트로픽의 클로드나 자사 어시스턴트 안에서 바로 재고를 확인하고 가격을 고치고 상품 정보를 바꿀 수 있는 연결 장치를 내놓았다. 밖에서 온 에이전트에게 문을 연 것인데, 어느 플랫폼을 지원할지는 아마존이 정하고, 판매자는 그 장치가 닿을 데이터의 종류를 고르고 행동마다 승인한다. 막는 결정과 여는 결정이 사흘 사이에 같이 나왔다. 둘을 가른 것은 에이전트의 성능이 아니라 통로가 합의된 것이냐였다.

기본값을 정할 때 따져 볼 것은 세 가지다. 우리 데이터 가운데 사람에게 열린 것과 대리 프로그램에게 열 것을 나눌 수 있는가. 들어온 요청이 대리 프로그램의 것임을 확인할 통로가 있는가. 확인된 뒤에 허용할 범위와 속도를 어디에 적어 둘 것인가.

5.2로그에 남지 않으면 나중에 따질 수 없다

항소법원의 논리를 뒤집어 보면 실무적인 함의가 하나 나온다. 사용자의 기기와 세션을 타고 들어온 요청은 사용자의 것처럼 보인다. 에이전트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기록에는 사람의 접속만 남는다. 그러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을 방법이 사라진다. 어떤 주문이 사람의 판단이었고 어떤 주문이 대리 프로그램의 판단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는 기록에서는 책임도 개선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에이전트 접근을 허용할지 정하는 일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접근 주체를 구분해 남기는 것이다. 사람인지 대리 프로그램인지, 어느 사용자를 대신한 것인지, 어떤 자격으로 들어왔는지를 기록에 세워 두면 나중에 정책을 바꿀 때 근거가 생긴다. 페블러스가 데이터 품질을 볼 때 값 자체만이 아니라 그 값이 만들어지고 오간 경로를 함께 남기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기록이 없으면 정책을 고칠 자격도 없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이 글이 인용한 사실 관계는 TechCrunchGeekWire의 보도에서, 약관 조문은 아마존 이용약관(2026년 8월 14일 갱신)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의 회사 약관에는 사람을 대신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문장이 있는가. 아직 없다면 그 빈칸을 누가 채우게 될지 이야기를 나눠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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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사건 보도

공식 문서

업계 표준 자료